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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포르셰와 아돌프 히틀러

o2zone 2017. 10. 21. 07:23

1875년에 태어난 페르디난트 포르셰,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헤미안 맵 펠스 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체코 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독일 국경쪽 10킬로 정도되는 곳....



당시 실용화되고 있던 전기에 관심을 보이며, 다락방에서 실험을 반복하던 소년. 18살의 나이로 비엔나로 상경, 전기 장비 제조 업체에 근무하게 된다. 23살 때, 로네루 포르쉐라는 전기 자동차를 제작하고,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하여 큰 방향을 일으킨다. 


그 5년 후에는, 오스트리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인 아우스토로 다임러 사의 기사 장에 발탁.


그런데, 그때 역시 18세의 나이로 비엔나에 상경 해온 인물, 14살 연하의 히틀러가 등장. 화가를 목표로 했지만, 좌절...부랑자 같은 생활을 하던 도중 서로 알게된다. 히틀러의 가족도 체코에 가까운 포르쉐와 같은 보헤미아 계이며, 어쨌건 두 사람 모두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쨌든 성깔도 버릇도 비슷한 포르쉐는, 1931년 마침내 혼자 스스로 독립하게 된다. 이듬해 궁핍 상태의 포르쉐의 곁으로 찾아 온 것은 소련의 기술 사절단.



"소련 정부의 기술적 진보, 동력화 및 전기 설비와 그 가능성을 귀하의 눈으로 좀 판단해주셨으면.."이라고 조언을 구해와, 호기심 가득했던 포르쉐는 그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고, 키예프, 쿠르스크, 오데사로 여행을 하고 자동차 공장에 탱크, 트랙터, 비행기 공장을 시찰. 


스탈린의 목적은 포르쉐의 능력을 눈여겨 보고, 그를 완전히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국가 차원으로 대우를 해주려고 했었다.



첫번째,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것.

둘째, 대중을 위해 저임금 승용차를 만드는 것.

세번째, 뛰어난 농업용 트랙터를 만드는 것....이것이 포르쉐의 꿈이었다.



뭐 이러한 것들이 소련과 협의가 되지 않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지 얼마되지 않은 1933년 2월에 개최 된, 베를린 모터쇼에서 히틀러가 연설한다. "국가를 진정으로 지지하고 있는 국민 대중을 위한 자동차야말로, 문명의 이기이며, 멋진 생활을 약속해 준다. 우리는 이제 "국민을 위한 차"를 가져야 한다"




얼마 후, 총통 관저에 호출 된 포르쉐 박사.

히틀러는 국민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하고, 1000마르크 이하의 자동차 개발 계획의 제출을 요구, 1934년 6월, 독일 제국 자동차 산업 연맹(RDA)와 포르쉐 디자인 회사는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그 이듬해 모터쇼에서 히틀러의 연설속에는 "나는 뛰어난 기술자, 프로쉐 박사가 그 재능을 모두 쏟아 부은 독일 대중차의 설계를 완료하고, 시제품 차의 테스트까지 하게 된 것을 매우 기뻐게 생각하고 있다"


독일 노동 전선 직속 폭스 바겐 생산 회사가 설립되었으며, 프리츠 토트라하는 건설 부대에 의해 하노버 근처의 황무지에 생산 대수 100만대를 목표로 한 초현대 공장이 설립.


그리고 이 공장 기공식에서 히틀러는 이 대중 차를 "KdF"라고 명명한다. KdF와 독일 노동 전선의 기반 인 "환희역행단"의 것이며, 물론 당시의 포스터는 "KdF Wagen"이라고 되어 있었다.



1939년 전쟁이 발발, 결국 국민 차는 일단 제껴두고 "큐벨바겐(통차)"으로 군사용으로 대량 생산이 시작된 것이었다.




후반에는 "독재자와 자동차 경주"라는 챕터도 나왔다. 자동차를 좋아했었던 히틀러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자동차 경주를 중요시. 1927년에 1000마일 경주를 기획하고, 1933년에는 알파 로메오를 국유화. 



그런 이탈리아 차를 이기기위해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다임러 벤츠와 포르쉐 레이싱 카의 디자인을 타진, 이미 설계도까지 완성했던 포르쉐 엔진을 유니온 사에서 제작한다. 이 회사는 이후 아우디라는 회사로 된다. 이렇게 벤츠와 포르쉐의 P 바겐이라는 레이싱 카는 그랑프리 레이스에서 이탈리아 팀을 압도...



한번도 경기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히틀러지만, 베를린 모터쇼 개막식에서는 총통 관저 앞에 레이싱 머신을 정렬하고 전시장까지 베를린의 거리를 달리게하여 만족해 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무렵....

포르쉐 박사는 1943년경에 "독일 전차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었던 것 같고, 전차 개발에도 어떠한 실력을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대한 것은 알려진게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