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투탕카멘의 저주에 얽힌 8명의 도시 전설

o2zone 2018. 3. 17. 07:25

1922년 11월 26일,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되어, 3000년 이상 이어져 온 왕의 잠이 마침내 깨어났다. 이 때, 왕의 영원한 평화를 방해한 자 전원에게, 죽음과 파괴를 가져올 강력한 저주가 걸릴 것이라는 경고. 


무덤의 발견과 발굴 등에 종사 한 사람의 사인이나 불행은 모두 "투탕카멘의 저주"와 관련되어졌다. 사람들의 입으로 전달되어 가는 가운데, 이야기는 점점 커지고 언론의 여파에 의해 "파라오의 저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는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9명에 얽힌 도시 전설이다. 과연 이들이 정말로 저주받았을까? 신만이 아는 사실. 


■ 조지 허버트(제5대 카나 백작) 영국 귀족 



투탕카멘 왕의 무덤 발굴에 자금을 제공 한 이 사람은, 먼저 저주에 의해 쓰러졌다고 되어있다. 카나 백작은 면도 중에 우연히 모기에 물린 후 곧 패혈증으로 죽었다. 


무덤이 파헤쳐지고 나서 몇 달 후, 언론이 미라의 저주를 입에 담기 시작 6주 후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미라의 잠을 방해 한 관계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카나 백작이 죽었을 때, 그의 집안의 모든 불이 괴괴망측하게 꺼져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 조지 제이굴드(미국인 사업가)



부유 한 미국인 자산가로, 지도적 철도 개발 전문가, 또한 투기가였던 제이굴드는, 1923년 투탕카멘의 무덤을 방문 후 곧 몸에 병이 생겼다. 굴드는 회복하지 못했고, 몇 개월 후 폐렴으로 사망했다.




■ 오브리 허버트(카나 백작의 이복 동생)



카나 백작의 이복 동생이라는 것만으로, 투탕카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오브리는, 눈에 퇴행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 만년은 거의 장님이었다. 의사는 썩은 치아가 눈 질환의 원인이라고 말해, 이를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버렸지만 효과는 없었다. 결국에는 역시 패혈증으로 죽었다.


■ 휴 G 에블린 화이트(영국인 고고학자)



영국인 고고학자. 투탕카멘의 무덤을 방문한 적이있고, 혹시 현장에서 발굴을 도왔을 수도 있다.


1924년까지 발굴에 종사 한 사람이 차례 차례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죽기 전에 자신의 혈액으로 보이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를 억지로 지워 없애려하고 있는 저주의 힘에 졌다"


■ 아론 엠버(미국인 고고학자)



미국인 이집트 고고학자 아론 엠버는, 카나 백작을 포함하여, 투탕카멘의 무덤이 열렸을 때 현장에 입회하고 있었던 사람의 대부분과 친구 관계에 있었다.


엠버가 죽은 것은 1926년이다. 볼티모어에 있던 그의 집이 저녁 파티를 주최 한 후 한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불타버렸다. 


무사히 탈출했지만, 시작했었던 논문의 원고를 가지러 엠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는 아들을 구하려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가족이 이 화제로 죽었다. 덧붙여서 엠버가 이때 저술 한 원고의 제목은 "이집트 사자의 서"였다고 한다.




■ 리처드 베델(카나 백작의 비서)



카나 백작의 비서로, 하워드 카터에 이어 투탕카멘의 무덤에 들어간 최초의 인물이다. 베델은 1929년에 의심스러운 죽음을 가져왔다. 런던의 회원제 클럽의 방에서 질식사 한채 발견 된 것이다.


곧 노팅엄 포스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고명 한 리처드 베델씨가 저주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실은 작년에 일어나고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 된 매우 귀중한 보물이 보관되어 있는 주택에서의 일련의 원인 모를 화재이다."


보물과 베델의 죽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여부의 증거는 전혀없다.


■ 아치볼트 더글라스 리드 경



투탕카멘의 발굴 멤버가 아니어도, 저주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 예. 리드는 방사선 학자로 투탕카멘의 X선 사진을 찍고, 박물관에 보냈을뿐이라고 하지만, 다음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하고 3일 후에 급사했다.


■ 제임스 헨리 브레스티드(미국인 고고학자)



당시의 유명한 이집트 학자의 하나 인 하워드 카터가 무덤을 열 때 함께 작업했다. 그리고 브레스티드가 집에 돌아가니, 애완 동물의 카나리아가 코브라에 먹혔고, 그 코브라가 아직 새장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코브라는 이집트 왕조의 상징으로, 왕을 수호하기 위해 머리 장식의 모양으로 그려진 것. 이것은 불길한 조짐이었다. 브레스 티드 자신은 1935년까지 살았지만, 이집트 여행 후 바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