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화산 폭발로 괴멸한 품페이에서 생존자는 어떻게 생활했나?

o2zone 2024. 6. 29. 20:01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에 있는 고대 도시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규모 분화로 발생한 화쇄류에 의해 땅속에 파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이애미 대학의 연구팀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폼페이에서 도망친 사람들의 기록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은 서기 79년 8월 24일에 발생한,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인해 멸망해 버린 도시로, 시속 100km라는 속도로 달려드는 화쇄류에 주민의 대부분이 도망치지도 못하고, 수만 명이 화산재에 생매장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일부 주민들은 18시간 이상 지속된 분화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각 도시에서 발견된 인골은 당시 인구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며, 마구간에서 수레와 말이 없어지거나, 배가 도크에서 실종되거나, 당시의 주민들이 가진 금과 보석이 자취를 감추는 등, 화산재 속에 남아 보존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유물이 사라졌다.

연구팀은 궤멸하는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으로부터 도망친 생존자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 그 방법은 "누멜리우스 포피디우스"나 "아울루스 움브리키우스" 등의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에 특유의 이름을 거론하고, 분화 후 주변 지역에 살던 사람의 기록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또한, 생존자를 수용하기 위해 인근 커뮤니티의 인프라가 개선되었다는 등의 정보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다.

 


벽에서 묘석까지, 수만 개의 고대 로마시대 유물 데이터베이스를 8년간 조사한 결과, 12개 도시에서 200명 이상의 생존자 증거가 발견되었고, 이 유물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베수비오 화산의 북쪽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부터 도망친 생존자 중에는, 새로운 공동체에서 번영한 가족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로마에서 18마일(약 28km) 떨어진 오스티아로 이주한 카르틸리우스 가족은, 그곳에서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모시는 신전을 건립했다.

 


또, 항만도시인 포츠올리로 이주한 아울루스 움브리키우스 가족은, 가업인 가름 생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분화의 생존자 모두가 새로운 커뮤니티에 성공을 거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포츠올리로 이주한 파비아 세쿤디나는 검투사 아쿠에리아스 더 레티아리우스와 결혼했지만, 레티아리우스는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세쿤디나는 경제적인 곤경에 처했다.

 


아비아니이, 아티리이, 마수리라는 가난한 가족은, 폼페이 동쪽 약 16km에 있는 누체리아라고 불리는 작은 가난한 커뮤니티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존자가 새로운 커뮤니티에서 생활을 재건해 나가는 가운데, 당시 로마 황제도 부흥을 위한 큰 역할을 했는데, 로마의 황제는 분화로 인해 피해를 입은 토지를 재건하고, 도로와 수도 시스템, 원형 극장, 사원 등 피난민을 위한 새로운 인프라를 건설하는 등, 해당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