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왜 "51 구역"이라고 부르는가?

o2zone 2018. 12. 18. 19:18

UFO에 얽힌 음모론으로 유명한 미국 네바다 주 그램 레이크 공군 기지, 통칭 "51 구역"은, 2013년 기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한때 극비 실험 시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명확하지 않는 의문점이 몇 가지있다.



과연 왜 51 구역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는가?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특히 유력한 것은 핵무기 실험장으로 지정된 것으로 지었다는 설이다.


- 전신은 라스베카스 폭격 사격 훈련장


51 구역이 있는것은, 미국 네바다 주 남부의 사막 지대에 설치된 넬리스 시험 훈련장(Nellis Air Force Range) 부지의 한 획이다.


거기는 네바다 핵 실험장에서 보면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토노파 시험장(Tonopah Test Range)을 비롯해서, 20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무기 시험장이 존재한다.



고립 된 장소는 물론이고, 그 밖에도 극비리에 실험과 훈련을 하려면 적당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건조한 기후 덕분에 비행 시험이 쉽다고하고, 변화 무쌍한 지형 무기 실험장에 딱이다.


이러한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1940년대 초, 일대는 국유지로 지정되어 이전부터 있었던 사유지는 접수 한 후 라스베가스 폭격 사격 훈련장9Las Vegas Bombing and Gunnery Range)을 개설.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미국 육군 항공대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이 넬리스 시험 훈련장과 토노파 시험장의 전신이다.




- 냉전 시대, 핵 실험장으로 전용


냉전시기에 들어가,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51 구역 주변에 거의 사람이 없는 지역은 그것을 위해 적절한 장소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라스베가스 폭격 사격 훈련장 남부의 광범위한 지역은 네바다 핵 실험장으로 거듭났다.



그 남쪽 경계에서 라스베가스까지는 불과 100킬로미터라는 거리.


어쨌든, 1951년 1월 27일, 핵 실험장의 남쪽에 위치한 프렌치 맨 플랫이라는 곳에서 핵실험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4번의 일련의 실험을 수행 한 후, 그 이후의 거의 모든(일부 예외는 있다) 실험 구획은 일련 번호로 불리게된다.


그 첫번째가 1951년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실시 된 버스터 정글 작전이 진행된 지역 7이며, 이 관례가 현재까지 계속되었다.


- 핵 실험 지역과 넘버링


네바다 핵실험장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지역 번호는 실험 구획에 지정된 것으로, 그 위치는 자료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지역을 실험장으로 지정하거나, 패턴 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작위"로 열린 것 같지만, 그것을 행한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담당자는 꽤 합리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던것 같고, 번호는 1~30에서 시작되었다.



지도를 잘보면 13,21,24,28이 없는것을 알수있다.


사실 이러한 번호도 핵 실험장의 명칭으로 제대로 사용되고 있다. 단, 네바다 핵 실험장 외에만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역 13은 네바다 핵 실험장 외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역 24는 국가 핵 안전국 네바다 지국이 관리하는 라스베가스 시설의 것이다.




또한 구역 28은 핵 실험장 남서부의 구역 25와 27의 옆에 지정되어 있었지만, 결국 두 영역에 합병되었다.


구역 21은 특정하기 어렵다.


- 핵 실험장 외에서의 넘버링


구역 21의 장소는 확실치 않지만, 네바다 핵 실험장 외부에서 실험이 실시된 것은 확실한 것으로, 그 실험에 자신의 번호가 매겨졌다.


예를 들어, 구역 13에서 1957년 4월 24일에 실시 된 핵탄두가 핵폴발이 아닌 폭발 자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은 "프로젝트 57"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1963년 5월과 6월에 토노파 시험장의 "구역 52"에서 핵무기의 "비핵 폭발"을 검증하기 위한 장외 실험을 4번 실시되었다.


또한 1963년 10월 26일에 네바다 주 펄롱에서 가까운 "구역 58"에서 12킬로톤의 폭탄을 지하 360미터에서 폭발시킨 목도리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 지진의 영향을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구역 번호가 50번대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은 "구역 51"도 그 일환이라는 추측과 모순되지 않는다.


또한 토노파 시험장의 구역 52가 구역 51에 가까운 것도 자연스럽다.



- 천연 자원 보호 협의회 핵 실험 목록


그리고 의외지만, 극비였던 51 구역에서 핵 실험을 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하지만, 1945~1992년에 걸친 핵 실험을 망라한 천연 자원 방위 협의회의 목록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이 목록에서 구역 번호에서 확인할 수 없는 네바다 핵 실험장 관련 실험은 프렌치 맨 평면에서의 실험 이외에 6개 있다.




구역 52의 "NV 주 폭격 훈련장"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4개의 "NV 주 펄롱"과 구역 58의 목도리 실험 2개, 그리고 1962년 5월 10일 "a third"이다.


마지막 실험은, 무기 관련 장비의 샤프트 실험으로 네바다 핵 실험장에서 실시 된 것으로 되어있지만, 구역과 구체적인 장소의 기재는 없다.



게다가 실험을 행한 연구소나 폭발의 규모에 대한 기록조차 없이 물음표까지 곁들여져 있다.


그 명칭은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에서 실시 된 것같은 시기의 실험과 일치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흥미롭다.


51 구역이 네바다 핵 실험장에 가까운 것이나 일급 비밀이었던 것, 주변 지역과 번호가 계속되고 있는지, 그 실험이 구역 52의 실험이 시작 1년 전에 실시되었는지.....


이들은 모두 51 구역이 네바다 핵 실험장에 의해 붙여진 일련 번호임을 보여주는 정황 증거인 것처럼 보이지만, 진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