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중 스파이

o2zone 2017. 4. 18. 07:00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최대 규모의 상륙 작전으로 알려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나치 독일군의 점령하에 있던 유럽을 제압한 일대 전환점이 된 싸움이다. 그런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계기가 된 것은 영국측의 이중 스파이로 활약 한 "가르보"라 불렸던 1명의 스페인 사람.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성급 호텔을 운영하고 있던 스페인의 조안 푸욜 가르시아는, "가르보"의 코드 네임을 가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나치 독일을 속인 영국측의 이중 간첩이었다. 푸욜을 알고있는 전쟁 전문가 Amyas Godfrey에 따르면, "푸욜은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그는 대머리였고 호감가는 얼굴이 아닌 나쁜 남자였다"라고 전했다.


푸욜은 1930년대의 스페인 내전의 경험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인간성을 파괴하는 악마"라고 부르며 파시즘을 경멸하고 있었다.


그의 스파이 활동을 기록한 "Agent Garbo"의 저자 스테판 타루티에 따르면, 그는 1941년에 마드리드의 영국 대사관에서 나를 스파이로 채용해주면, 나치 독일에 대한 첩보 활동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대사관측에서는 코웃음을 치며 일언지하에 거부.



이에 푸욜은 독일로 가서, "런던에 자주 여행하는 스페인 정부 관계자이며,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의 동조자"로 독일에 접촉. 그곳에서 영국의 정보를 캐내는 스파이로 활동하게 된다.




나치 독일의 스파이로 채용 된 푸욜은, 가지고 있던 외교 여권도 가짜였고 런던에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그래서 그는 포르투갈 리스본에가서 영국 관광 안내 책자, 영국군에 관한 참고 서적, 영어 잡지 등을 참고하여 임의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올렸는데....



독일군은 이 보고서를 보고 후하게 평가, 안정적인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푸욜은 항상 영국측 스파이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그런 푸욜을 마드리드 주재 영국 대사관에서 남다른 재능이 있는것으로 판단. 대사관에서 푸욜을 전격적으로 스파이로 채용. 그렇게해서 그는 런던으로 가게되었고, 런던에서 영국 정보부에 들어가면서 암호명으로 "가르보"라는 비밀 코드를 받게된다.


양측의 이중 스파이로 열심히 활동을 하게 되었고, 결국 나치의 히틀러에게도 신임을 얻게된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종말을 치달을 때....연합국 측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계획하게 된다.



독일 수뇌부에서는, 연합군이 도버해협을 넘어 프랑스 해안으로 틀림없이 반격을 해오리라고 예상하고, 프랑스 해안에 철벽 요새라고 할정도의 방어망을 구축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연합군의 아이젠하워 장군이 영국의 도버해협쪽에 병력과 군수품을 총집결하는 것을 보고,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 또는 그 북쪽으로 상륙할 것이라고 예상.




만약 이런 상황에서 연합군이 상륙 작전을 감행했다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푸욜은 독일 첩보부에게 문서를 한 장 보내게 되는데....노르망디 해안은 거짓정보이며, 기만전술이라고 보낸것이다. 


이에 독일군들은 부랴부랴 두번째 상륙 지점이었던 파드 칼레로 병력을 총 집중하였고, 그 때문에 노르망디에는 최소병력만 배치하게 되었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한 연합군은 그렇게 큰 출혈없이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상륙 작전으로 독일이 패망의 길로 접어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는....


그렇게 해서 2차 대전은 끝이나고....결국은 나치가 푸욜이 이중첩자라는 사실을 알고 죽이기전에, 영국 정보부는 푸욜을 앙골라에서 여행 중 말라리아에 걸려 1949년에 죽었다고 거짓 정보를 퍼뜨린 후, 베네수엘라에 도망치게 해주었다는. 베네수엘라에서 가명을 사용하며 서점과 선물가게를 하면서 살았고, 그 후 1988년에 사망하게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