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유전정보를 번역기(리보솜)를 이용해 단백질로 변환해, 스스로의 몸을 구축하고 있다.
번역기(리보솜)는 유전 "정보"를 단백질이라는 실체로 변환하는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여러 단백질은 유전자의 자기복제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번역기(리보솜)는 생명의 존속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
운 좋게도 번역기(리보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설계 정보는 모두 유전자에 저장돼 있고, 번역기(리보솜)를 사용해 새로운 번역기(리보솜)생산도 가능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묘한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유전자를 기능시키려면 잘 작동하는 번역기(리보솜)가 있어야 하고, 그 번역기(리보솜)를 만들려면 유전자에 번역기(리보솜)정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
즉 기존의 이론에서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유전자와 번역기의 관계는 모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LMU)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초기 생명의 유전자로 여겨지는 RNA 자체에 번역기(리보솜)없이 아미노산의 중합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이라면 교과서에 적힌 생명 탄생 과정에 큰 변경이 가해질 것이다.
그러나 대체 RNA의 어디에 번역기(리보솜)를 대체하는 기능이 있었을까?
연구내용의 자세한 내용은 2022년 5월 11일에 "Nature"에 게재되었다.
■ 생명의 기원에 육박하는 발견, 아미노산은 효소 없이 RNA 만으로도 중합하는 것으로 판명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 지구의 바다는 무수한 화학반응에 의해 지배된 거대하고 무질서한 반응로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자가 복제가 가능한 RNA 분자가 형성되면서 초기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생각은 "RNA 월드 가설"로 알려져 있으며, 생명의 기원에서 유력한 후보가되고 있는데, 하지만 RNA 월드 가설에는 약점이 있다.
유전자로서의 RNA가 기능하려면 유전정보를 실체가 있는 단백질로 변환하는 번역기가 필요.
현재의 지구 생명은 세균부터 인간까지 모두 리보솜이라고 불리는 RNA와 단백질 복합체가 번역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RNA와 단백질을 만들려면 리보솜 자체가 필요하다.
이 기묘한 모순은 RNA 월드 가설에 있어서 최대의 장애였다.
그래서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번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RNA의 일종 "tRNA"와 아미노산의 관계를 알아봤다.
tRNA는 유전정보가 번역돼 단백질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연구자들이 이 tRNA를 조사한 결과, 일반 4가지 염기 "A.U.G.C"와는 다른 비표준형 염기가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고, 또한 이 비표준형 염기는 어떤 생물의 RNA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그 기원은 모든 생물의 조상(LUCA)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판명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화석과 같은 분자의 몇 가지는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라고 하는 단백질의 구성요소에 결합하는(수식받는)기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들 비표준형 염기의 위치를 궁리할 수 있다면, RNA만으로도 아미노산을 중합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실험을 실시.
실험에 앞서 기증자 사슬(공급자)끝에 아미노산과 결합할 수 있는 비표준형 t6A로 불리는 염기를 배치했고, 엑섭터 사슬(받는 쪽)맨 끝에 아미노산과 결합 가능한 또 다른 mnm5U로 불리는 비표준형 염기를 배치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양쪽을 섞었더니, 약간의 열로 t6A가 파괴되어, 그 아미노산을 mum5U에 결합되어 있던 아미노산으로 넘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아미노산의 전달이 완료되면, 양쪽 사슬이 괴리되어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갔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최대 15개의 아미노산을 연결시킬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 결과는 번역기(리보솜)가 필요없이 RNA가 아미노산을 연결해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연결에 의해 만들어진다)
■ 우선 RNA가 먼저 만들어진
이번 연구를 통해, RNA는 아미노산을 독자적으로 중합해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RNA 월드 가설에서는, RNA와 번역기(리보솜)의 관계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모순됐지만, 실험 결과는 RNA 생성이 앞서 이뤄진 것을 지지하고 있다.
또한 순수한 의미의 RNA 월드는 존재하지 않으며, RNA와 단백질은 항상 같은 분자 내에 존재했다고 결론짓고 있다.
고대 RNA에도 포함되어 있던 매우 역사적인 염기에는 아미노산에 의해 독자적으로 수식되는 기능이 있으며, 결합과 괴리의 반복에 의해 아미노산을 신장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보다 긴 RNA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RNA의 여러 지점에서 아미노산의 중합이 발생하고 있는 모습도 확인되었다.
생명 탄생 과정에서 RNA와 단백질의 관계는 서로 영향을 줌으로써 생명 기능의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와 기능적인 단백질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리보솜 등의 현재 지구생명에서 번역기를 담당하는 존재도 원시적인 RNA와 단백질의 상호작용이 쌓여 형성됐다고 말한다.
어쩌면 미래 생물 교과서에서는 RNA 월드 가설에 이어 "아미노산의 중합은 효소없이 RNA에서만 일어난다"는 한 문장이 덧붙여져 있을지도 모르겠다.